에코스 구독자님, 안녕하세요. 에코스의 수요일 뉴스테러가 도착했습니다. 💌 |
|
|
에코스 구독자님, 콜린 퍼스와 베네딕트 컴버배치, 조지 매카이가 출연한 영화 <1917>에 대해 아시나요?
1917은 2019년 개봉한 1차 세계대전 배경의 전쟁영화입니다. 장장 2시간에 달하는 장면을 원테이크로 찍었다느니, 동년 개봉한 영화 <기생충>이 없었다면 아카데미를 휩쓸었을 전쟁영화 중 수작이라느니 하는 평가는 이미 수도 없이 들어왔을 겁니다.
배우들의 호연과 긴박감 넘치는 스토리, 감독만의 독특한 연출기법은 관객들을 매료시키고도 남은 <1917>의 강점이지만 오늘 이 글에서는 그 이야기는 잠시 미뤄두고, 필자만의 관전 포인트와 배경지식을 소개하며 약간의 ‘딴소리’를 해보고자 합니다. |
|
|
① 프랑스 군인의 와인 한 병과 맞바꾼 스코필드의 훈장 🍷
영화 초중반, 전쟁 중 공로를 인정받아 훈장을 받은 경력이 있는 스코필드에 블레이크는 부러움을 표시합니다. 그러나 스코필드는 예전에 프랑스 군인의 와인 한 병과 바꿨다고 대답하죠.
영국과 프랑스는 전통적인 원수지간이었습니다. 조금 순화해 보자면 라이벌이라고 할까요. 그런데 영화 곳곳에서 프랑스 지명이나 프랑스인(프랑스 군인)과의 일화, 실제로 프랑스인과 조우하는 장면 등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는 전역(战域)에 프랑스 국토가 포함되어 있었던 것과, 우리가 세계사 시간에 질리게 외웠던 ‘3국 협상’에 의한 것임을 알 수 있는데요. 그 수위가 약하면 분쟁, 강하면 전쟁을 불사하던 양국이 협상국으로 손을 잡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
|
|
대부분의 나라, 아니 인간관계가 그렇듯 이런 원수들이 손을 잡는 건 ‘외부의 적’이 나타났을 때입니다. 영국과 프랑스가 라이벌로 지내던 시대의 한편에서는 비스마르크를 앞세운 독일이 통일의 목표를 완수하고 신흥 국가로서 부상 중이었습니다. 당시 독일은 프랑스를 유럽에서 외교적으로 고립시키고, 유럽의 세력 균형 유지를 명분삼아 오스트리아, 이탈리아와 ‘3국 동맹’을 체결했습니다.
뒤이어 빌헬름 2세는 팽창주의 정책을 펼쳐 대외 팽창에 대한 야심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영국과 프랑스는 러시아와 함께 3국 협상이라는 비공식적인 외교 동맹을 결성했고,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발발한 전쟁이 바로 제1차 세계 대전입니다. 항간에는 이들의 외교 동맹이 유럽의 세력 긴장을 고조시켜 전쟁 발발까지 이어진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어찌됐건 불안한 정세 속에서 같은 편이 되기로 약속할 필요성은 3국의 지도자들이 모두 공감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오래 전부터 국가 관계와는 달리 양국간의 인적 교류는 활발하게 이뤄졌으나 국가적 협력을 이룬 것은 특징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영화에서는 프랑스 보다는 영국과 독일에 포커스를 두고 있지만 이 전쟁과 동맹이 두 국가간 관계의 전환점이 되었다는 부분을 기억하면서 보시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
|
|
② '참호'라 쓰고 '무덤'이라 읽기 🪦
사실 이 영화는 초반부터 잔인한 장면을 무서워하는 필자에게는 꽤나 고역이었던 장면이 많았습니다. 참호벽에 기대 잘린 종아리를 잡고 소리 지르는 병사,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있거나 심지어는 철조망에 걸려 있는(!) 말과 인간의 시체들. 이러한 묘사는 영화 후반, 거의 마지막 장면까지 잊을 만하면 나타났습니다.
1차 세계대전의 중요 특징 중 하나인 참호전 때문인데요, 독일군이 마른 전투에서 패배한 이후 더 이상의 후퇴를 막기 위해 지은 것을 시작으로 거대한 참호전선이 만들어졌습니다.
대량살상무기의 발달로 평지 대신 구덩이를 파고 들어가 공격과 방어를 이어가는 아이디어는 얼핏 들으면 기발해 보였지만 실상은 참혹했습니다. 시야 확보가 어렵고 방어시설이 부족해 머리만 내밀었다 하면 즉시 총알이 날아오는 상황은 예삿일이었으며 그 외에도 문제는 심각했습니다. |
|
|
임시로 흙구덩이를 판 모양이기 때문에 비가 오거나 습한 지대에 참호를 만든 경우 그 속으로 들어차는 물로 인해 병사들은 참호족을 달고 살아야 했으며, 그곳에서 먹고 자고, 대소변을 보고 부상병을 처치하고, 사망자를 처리할 시설도 마땅치 않아 죽은 동료를 옆에 두고 생활해야 했습니다.
영화에서 볼 수 있듯 시체를 파먹는 쥐는 고양이만큼 살이 찌는 반면 정작 병사들에게 보급되는 식료품은 형편없는 수준이었고, 목욕과 같은 청결은 언감생심 머릿니가 두피까지 파고들고, 상처는 대강 더러운 붕대로 감고 마는 극한의 비위생적인 환경에 처해 있었습니다.
✔️ 참호족: 여러 날동안 차가운 양말, 신발, 장화를 신었을 때 발생하는 한랭 손상. 물집이 생기고 감염에 취약하다. |
|
|
이렇듯 피해가 막심한 참호전이었지만 한 가지 포인트로 영화 속에서 양국의 참호를 비교해 볼 수 있는데요, 상대적으로 조잡하고 원시적인 형태의 영국군 참호와는 달리 독일군의 참호는 꽤 그럴듯한 구색(?)을 갖추고 있습니다.
참호속 길이 상당히 잘 닦여있고 흙벽은 돌이나 나무, 모래주머니로 덧대어 물이 차는 현상 등을 방지한 것은 물론, 심지어는 침대 프레임이 배치된 휴식공간까지 따로 지어 묘한 안정감을 주기까지 합니다. 작중에서는 이런 차이에 대해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아 별다른 배경지식이 없는 관객에게는 대조감과 상상력을 불러 일으키는 요소라고 볼 수 있습니다.
<1917>에는 영국군의 서로 다른 지역의 참호 2개, 독일군의 참호 1개가 등장하게 되는데요, 인물들의 대사와 참호의 생김새, 생활 모습 등을 주의 깊게 보신다면 슬쩍 지나가는 장면과 디테일들도 다르게 보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
|
③ 전쟁을 끝내는 길은 마지막 사람까지 죽는 것 🔫
1차 대전 하면 참호전과 같이 따라붙는 수식어로 ‘소모전’이 있습니다. 엄청난 인명피해와 경제적 손실은 전쟁으로 인한 당연한 피해라고 생각되지만 1차대전은 그 규모와 심각성이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양측 진영은 상대측 진영에 포탄을 쏟아부었고, 부대가 전멸되어 전선에 구멍이 생기면 징집을 해서라도 새로운 군인들을 끊임없이 채워 넣었습니다.
그렇게 끝없는 무기와 인력을 갈아넣어 하루 간격으로 요충지를 뺏고 뺏기기라도 한 것 같지만 현실은 고작 몇 미터의 땅을 수 개월 걸려 전진하거나 후퇴할 뿐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작품 곳곳에서 이에 대한 군인들의 자조적인 태도를 엿볼 수 있습니다. 주인공 스코필드와 블레이크가 명령을 받고 떠날 때 출발선에서 등장한 레슬리 중위와 최전선에서 지휘하던 매켄지 중령이 그렇게도 멀리 떨어져 있으나 상부의 명령을 듣고 같은 반응을 보이는 부분에서 알 수 있죠.
실제로 1차 세계대전 중 최악의 소모전으로 꼽히는 베르됭 전투나 파스샹달 전투 등은 아직까지도 그 비슷한 사례를 찾아보기 힘든 참혹한 전투입니다. 영화의 마지막 즈음 소모전의 양상을 살짝 엿볼 수 있는데요, 비록 전운이 감돌았지만 꽤나 억지스러운 명분을 들고 시작한 전쟁이 얼마나 큰 낭비와 희생을 낳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장면입니다.
죽음과 부상을 두려워하는 것을 넘어 인간적 면모인 희망마저 경계하는 전쟁 당사자들의 심리를 따라가다 보면 영화가 주는 또다른 메시지를 받으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
|
|
<1917>은 1차 세계대전 당시의 긴박한 상황을 그려내고 있지만, 사실상 전투 장면은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대신 개인적인 고통, 동료애, 전쟁에 대한 의문 등을 다루며 국제 정세나 진영 논리보다는 개인적인 시선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데, 격투나 총격 장면보다는 전쟁의 최전선에서 벌어지는 상세한 일상 장면들이 더욱 인상적입니다. 이 영화를 통해 약 2시간 동안 독자 여러분들께서는 전쟁을 실감나게 체험하고, 더 나아가 세계 대전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영화 “1917”을 강력 추천하며 글을 마치겠습니다. |
|
|
국제시사연합ICAU 뉴스레터 에코스 Echoes
E-mail : icau.contact@gmail.com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