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스 구독자님이 생각하는 스토리는 무엇인가요? 누군가는 소셜미디어(SNS) 스토리를, 누군가는 영단어 뜻 자체인 이야기를 떠올릴 것입니다. 또 특정 소설의 전반적인 내용일 수도 있고요. 그러나 책 『서사의 위기』 저자 한병철은 스토리를 ‘현대인이 중독된 것’이라 정의합니다. 그에 따르면 스토리는 삶의 방향이나 의미를 제시하지 못하는 뉴스와 정보로, 끊임없이 등장하고 또 빠르게 지나간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24시간 동안 반짝 빛나고 사라지는 소셜미디어의 빨간 동그라미처럼 말이죠.
▲ 책 『서사의 위기』<사진=다산초담>
① 스토리와 서사 🆚
『서사의 위기』에 따르면, ‘스토리’와 ‘서사’는 엄연히 다릅니다. 저자는 서사는 나만의 맥락과 이야기, 삶 그 자체라고 규정합니다. 나의 저 먼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연결하기에 방향성을 띄고요. 동시에 곧 사라져 버릴 정보에 휩쓸려 자신만의 이야기를 잃은 사회, 내 생각과 느낌과 감정을 말하지 못하고 입력한 정부를 앵무새처럼 내뱉는 사회의 끝은 서사 없는 ‘텅 빈 삶’이라 말합니다. 인터넷에 떠도는, 이름 모를 누군가가 한 말을 나의 생각이라 여기며 맹신하는 소셜미디어 속 사람들의 모습이 떠오르는 건 우연이 아닐 겁니다.
또한 저자는 근대의 신문 독자들은 시선을 멀리 두고 머무르는 대신, 하나의 뉴스거리에서 다른 뉴스거리로 관심을 이동시킨다고 설명합니다. 서사가 될 수 없는 스토리, 즉 정보는 늘 더 자극적인 것으로 대체된다는 의미인데요.
우리가 과거를 현재에 끌어내어 엮고 현재 안으로 계속해서 작용하게 하는 서사적 장력이 필요한 존재인 ‘인간’이라는 사실을 떠올려 본다면, 어떤 것이 더 가치 있는지는 깊게 생각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② 디지털 파놉티콘 SNS 📱
24시간 동안 공유가 가능한 소셜미디어의 ‘스토리’, 다들 이용해 보셨을 겁니다. 짧은 순간 공유되는 찰나의 순간은 머무름을 허용하지 않는데요. 저자는 디지털화된 정보에 예속되고 과잉된 스토리에 휩쓸리며 공허해진 현대인의 삶을 ‘서사의 위기’라고 진단합니다.
사람들은 ‘나의 순간을 기록’한다는 이유로 자신의 일상을 끊임없이 공유합니다. 그러나 저자는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같은 디지털 플랫폼의 ‘스토리’도 진정한 의미에서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이들은 어떠한 서사적 길이도 보이지 않으며, 그저 일련의 순간 포착일 뿐 아무것도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 논지인데요. 사실 우리는 이 주장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짧은 스토리를 통해 해당 순간의 현재와 과거, 그 맥락을 파악할 수 없다는 걸 경험을 통해 깨달았기 때문이죠. 스토리는 그저 빠르게 사라지며 아무것도 남지 않는 시각적 정보일 뿐입니다.
▲<사진=픽사베이>
그렇다면 이 위기는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요? 저자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드는 삶, 다시 말해 서사의 회복을 강조합니다. 특히 미하엘 엔데의 소설 '모모'를 예로 들며 '경청'을 제안하는데요. 소설 속 어린 소녀 모모는 사려 깊은 침묵으로 모두가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도록 배려합니다.
이에 저자는 "경청은 상대에게 이야기할 영감을 주고 이야기하는 사람 스스로 자신을 소중하다고 느끼고,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심지어 사랑받는다고까지 느끼는 공명의 공간을 연다"고 설명하죠.
③ 에디터 총평: ★★★★☆
최근 가지 많은 대한민국은 여러 사건들로 바람 잘 날 없는데요. 톱스타의 마약 사건, 말도 안 되는 유행어를 남긴 사기꾼, 매일 논란되는 갈등 이슈들까지,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사건사고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휘발성 강한 이슈들은 매우 자극적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까요? 우리는 알고 싶지 않은 과한 정보들에 피로감을 느끼며 자극적인 소식들로부터 멀어지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그리고 저자 한병철은 『서사의 위기』를 통해 ‘서사’가 사라진 현대사회와 그 대책을 이야기합니다. 왜 우리가 이토록 과잉된 정보 속에서 피로함과 공허함을 느끼는지도 설명해 주면서 말이죠.
물론 이 책은 상당 부분이 철학적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어 쉽게 읽히지는 않습니다. 일부 독자들은 과한 인용으로 인해 불편하게 읽히는 게 당연한 책이라고 평가하고요. 그러나 충분한 시간 동안 작가가 말하는 ‘서사’의 의미를 사유하면서 읽는다면 얻어가는 것 또한 많은 책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 저자 철학자 한병철 <사진=연합뉴스>
『서사의 위기』는 디지털화된 정보에 지배 당하고 있는 현대사회의 문제를 인지하도록, 삶의 새로운 ‘서사’를 시작할 수 있도록 독자들을 안내합니다. ‘나는 분명 행복한 것 같은데 왜 불안하고 공허할까’에 대한 해답도 제시해 주고요. 따라서 저는 이 책의 모든 내용을 관통하는 마지막 문단을 소개하며 이번 글을 마무리 해 보려 합니다.
“삶은 이야기다. (…) 이야기에는 새 시작의 힘이 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모든 행위는 이야기를 전제한다. 이와 반대로 스토리텔링은 오로지 한 가지 삶의 형식, 즉 소비주의적 삶의 형식만을 전개한다. 스토리텔링으로서의 스토리텔링은 다른 삶의 형식을 그려낼 수 없다. (…) 바로 여기에 스토리 중독 시대 서사의 위기가 있다.”